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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미디어)

미디어 풀 개념의 도입

by phd.갖고싶은자 2021. 9. 7.

 국방의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외교정책보다도 더욱 강하게 언론을 압박하게 된다. 우선 미국이 군 병력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이에 반대하는 정치 엘리트들은 정치적 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또한 정당의 지지자들 역시 반애 국자의 누명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선택을 비판하지 않게 된다. 결국 이렇게 반정부적 입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들이 모구 침묵하게 되면 언론은 전적으로 정부 대변인의 입장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 과정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베트남전에서 미디어의 보도 역할 수행과 정치적 변화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베트남전의 발발과 전쟁 초기단계에서 언론의 전쟁 보도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쟁이 이어지자 뉴스 단체는 직접 기자들을 파견하여 실제 전쟁의 상황을 취재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사상자가 늘어가면서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 전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이에 맞춰 언론은 정부 우호적이던 보도의 방향을 바꾸어 전투에서 승리하는 공산주의와 미국 내의 반전쟁 움직임을 보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베트남전의 진행상황이 미국 국방부의 정책 결정자에게 남긴 결론은 명확하다. 전장에 대한 미디어의 접근과 보도를 제한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군사적 결정사안에 대한 국민 지지도를 약화시켜 국방정책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방부는 언론에 대한 더욱 제한적인 접근을 보였는데 이는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그레나다를 침공하고 전투가 지속되자 뉴스 단체들은 허둥지둥 기자들을 그레나다로 보내 현장의 상황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몇 백이나 되는 미국의 기자들이 그레나다로 가기 위한 시도를 하였으나 국방부는 그들에게 기밀 유출의 이유를 들어 접근을 제한하였다. 심지어 그레나다에 있던 특파원의 취재 역시 실질적으로 금지시켰다. 이후 결국 미디어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국방부가 오직 15명의 리포터를 그레나다에 올 수 있게 승인하였으나 실상은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현장의 직접적인 취재보다는 군측이 제공한 브리핑과 필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렇듯 전장에 대한 언론의 접근을 막고 떠먹이듯이 미리 준비한 이미지와 정보들을 제공한 결과 당시 대통령이던 레건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통제했다.

 침공 후 몇 달이 지난 뒤 정부가 제시했던 브리핑이나 자료들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됐다. 당시 보도되었던 자료들은 레건 대통령의 정부 신용도에 대해 충분히 문제제기할 수 있는 사안들이었지만 다행히 이미 언론은 다른 사안들에 관심을 돌린 이후였고 정부의 정책은 의도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레나다전의 여파와 언론 검열의 분노를 다루기 위해서는 언론을 대하는 새로운 방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미디어 풀'의 개념이다. 이는 언론이 사안에 대한 접근을 허가받지만, 오직 국방부의 세밀하고, 전면적인 감독 아래에서 작은 규모의 기자 집단만이 전장으로의 접근을 허가받는 방식이다. 즉, 국방부의 통제권 아래에 있는 기자들이 취재한 자료들로 모든 뉴스 단체의 보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적용된 미디어 풀의 개념은 미국의 파나마 침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방부는 기본적으로 소수 기자 집단의 접근 허용과 더불어 언론의 보도 자료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마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이 없는 것처럼, 또 미국 정부의 입장이 정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보도 자료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모든 뉴스의 보도는 전쟁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두드러지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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