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UDY (공부)

김연수 작가의 첫사랑을 읽고

by phd.갖고싶은자 2021. 6. 9.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이해하려면 김연수 작가의 생애를 이해해야 한다. 김연수 작가는 1970년생으로 정상적으로 대학에 들어간다면 89학번이나, 혹은 재수를 하였다면 90학번 정도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가 등단한 93년 대학 학부과정 3학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추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편적으로 보면 그는 유년시절 7,80년대의 군사 독재정권 속에서 성장했고, 90년대 초에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그 중심에 있었다. 이를 토대로 소설을 시대에 맞게 이해할 수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명문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그는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좋아했던 이에게 편지를 쓴다. 주인공이 일곱 살이 되던 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한다(주인공은 70년생이란 걸 알 수 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시위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반공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때 주인공은 나비를 본다. 그리고 홀린 듯 나비에 이끌린 주인공은 나비를 따라가 피켓을 휘둘러 죽이고 만다. 그러나 죽은 나비를 본 주인공은 나비를 운동화로 짓밟아 버린다. [나는 눈을 뜨고 그 휴지 조각보다도 못한, 노란 덩어리를 운동화로 마구 짓이겼지]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아버지와 무주 남대천에 가서 반딧불이를 본다. 저녁 하늘아래에서 본 반딧불이의 아름다움에 반해 주인공은 반딧불이를 빈 병에 잡아넣는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병에 잡아넣은 반딧불이의 끔찍한 모습을 주인공은 보게 된다. [그 아름다운 빛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깨어보니 모두 빳빳하게 죽어 있었어. 그 아름다웠던 빛은 끔찍하게 생긴 곤충이었던 거야.]

소설의 주인공이 나비와 반딧불이에게 보이는 행동은 유아적 사랑과 유사하다. 아름다운 것에 홀려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병에 가두고, 소유하지 못하게 되면 폭력을 휘둘러 짓밟는다. 욕망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편지의 대상에게 보이는 사랑도 이와 비슷하다.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하자 폭력을 휘두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너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싼 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중략) 나는 내가 너를 때렸다는 사실을 수긍해야만 했어]

이 같은 주인공의 사랑은 묘하게 시대와 닮아 있다. 주인공이 유년시절을 보낸 70년대는 남북분단이 격해져 반공주의가 사회적 사상으로 굳어지고, 박정희 군사 정권이 독재하던 시기이다. 유신의 시대 아래에서 시민들은 억압받았다. 남자들의 장발과 여자들 미니스커트까지 단속했다는 것은 시대를 단편적으로 설명해준다. 결국 주인공의 나비와 반딧불이에 대한 사랑은 시대가 표방하고 있는 폭력이다. 똑같이 발로 짓이기고, 잡아넣는 것이다.

한편 주인공은 90년대에 명문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수배자가 된다(임수경 얘기와 새로운 대통령 얘기를 하는 걸로 미루어 보아 운동권에서 활동하다 지명수배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을 꿈꾸며 데모를 했지만 결과는 국가의 권력에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서울 하늘로 12월의 새로운 바람이 스쳐지나갔지. 젊음을 바쳐 우리가 꿈꿨던 세상을 반쯤은 이룬 것일까? 아니면 모든게 이제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결국 주인공은 본인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과거 자신의 사랑이 폭력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을린 유리를 통해 일식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비로소 폭력 없는 사랑을 목도하게 된다. 혜지 누나가 동생과 나란히 서서 바라보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었고, 주인공이 처음으로 사랑을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새였고 물이었고 혹시는 바람이엇어. (중략) 알겠니? 그 누구도 망가뜨릴 수 없는, 첫사랑에 빠진거야]

첫사랑은 김연수 작가가 겪은 시대가 그대로 묻어나는 소설이다. 그가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살아가며 느낀 시대상을 주인공의 삶으로 녹여낸 것이다. 때문에 나비와 반딧불, 그을린 유리까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사랑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소설의 배경을 2020년인 현재로 설정하게 된다면 마스크를 사랑의 상징으로 대체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살아간다. 기술의 발전과 보급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시공간을 뛰어넘고, 개인의 제약을 넘어서 우리는 전세계 어느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역설적으로 언제든지 연결할 수 있기에 우리는 누구와도 연결하지 않는다. 이웃과의 좋은 관계, 계모임, 반상회 등등 의미 있는 연대의 부재가 현대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이다. 진실된 소통을 거부한 채 사람들은 마스크(가면)를 썼다. 그저 표정을 볼 수 없는 가면을 쓰고 타인을 대하는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가벼운 것이 되었다. 진심이 아닌 가면을 쓴 사랑이기에 가면을 벗는 것처럼 사랑도 쉽게 벗겨진다. 게다가 코로나로 우리는 실제로 마스크를 쓰고 일상을 살아가야한다. 비중 있고 진실된 사랑의 기회는 더욱더 멀어지게 된다.

댓글